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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에 갇힌 대한민국]<1> 대한민국 곳곳서 진흙탕 싸움
북핵보다 적폐청산에 누리꾼 더 관심
 
     
기사입력
2017/10/28 12:38 

 
# 검찰은 최근 주요 대기업의 사회공헌팀에서 2008년 이후 최근까지 공익단체 지원 내용을 제출받았다. 압수수색 영장 없이 수사 참고자료를 요청하는 형식이었다. 사회공헌 담당 임원들도 여러 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이 사실상 이명박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수 정권 9년간 대기업의 기부 명세를 다 들여다보는 셈이다.

제도-관행 수술 급한데… ‘보수정권=적폐’ 낙인찍기 급급

이는 박근혜 정권이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해 보수단체를 지원했다는 일명 ‘화이트리스트’ 수사의 확대 버전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결국 보수단체 지원 사실을 실토하라는 거니 정부의 ‘야마’(핵심이란 뜻의 일본말)에 맞춰 보수단체 위주로 제출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검찰이 영장 없이 무리한 전수 조사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27일 자유한국당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장.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다스’ 실소유주 의혹, 박근혜 정부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의 경찰 인사 개입 의혹,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관련 논란, 채동욱 전 검찰총장 개인정보 유출 의혹, 롯데월드타워 건립 특혜 의혹, 강원랜드 채용 비리, KBS 등 방송 장악 의혹 등 대략 10개 안팎의 수사를 촉구하는 주문이 쏟아졌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 같은 적폐청산 수사 촉구에 “유념하겠다. 엄중히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 ‘자나 깨나 적폐청산’에 곳곳 대치

검찰, 국가정보원, 정부 부처 등 여권이 전방위로 적폐청산을 추진하면서 대한민국이 온통 ‘지뢰밭’이다. 검찰의 수사력이 총집결된 서울중앙지검은 현재 적폐청산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수사부서 24곳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9곳에서 적폐 수사를 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과 국군 기무사령부의 심리전단 활동을 비롯해 보수 정권 9년의 치부에 검찰의 칼끝이 향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다스㈜ 실소유주 의혹도 첨단범죄수사1부에 배당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등 정부 부처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도 속속 수사를 의뢰하고 있어 검찰의 수사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코너에 몰린 보수 야당은 ‘정치 보복’이라며 반격에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며 ‘맞짱’을 떴다. 청와대가 각 부처에 적폐청산 TF를 구성하라는 공문을 발송한 것과 관련해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백원우 민정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전 대통령 수사 가능성을 내비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 대해선 ‘해임 카드’도 거론했다.

당초 적폐청산은 국정 농단 사태를 계기로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촛불 민의’에서 출발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촛불의 명령’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유인태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국가기관이 불법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줘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적폐청산은 과거 권력의 잘못된 행태를 끊자는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적폐청산에 ‘미래비전’이 안보인다

그러나 국가 원로와 전문가 사이에선 적폐청산의 본래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적폐청산이 ‘전환기 정의 세우기’라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돼 진두지휘하다 보니 ‘정치 보복’이라는 반격을 불렀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 적폐청산 대상 목표 명확해야

문재인 정부는 출범 6개월을 맞도록 적폐청산 외에 별다른 미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적폐청산을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서 적폐로 몰린 이들의 저항이 커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에 대한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채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만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적폐청산을 하자면 양파 껍질 까듯 5년 내내 계속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김영삼 정부)은 “적폐청산은 미래로 가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인데 이 정부가 하려는 적폐청산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현실적인 비전이 없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때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과 같은 적폐청산은 ‘한국병 치유’라는 국정 비전을 국민과 공유하며 동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적폐청산의 칼끝이 정해진 수순처럼 이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는 것에도 우려가 나왔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정치의 본질은 사회 통합이다. 여권이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으로 ‘한풀이 정치’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고 주문했다.

과거 정권의 폐단을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다 뜯어고치려는 것 자체가 과욕이라는 지적도 있다. 허 석좌교수는 “부처별로 잘못된 관습이 있다면 조용히 들춰내 가능한 것부터 고치고, 임기 말에 국민 앞에 결산 보고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 뒤 미처 못 한 부분에 대해선 국민의 선택을 다시 구하는 게 ‘책임 정치’라는 얘기다.

홍수영 gaea@donga.com·송찬욱·전주영 기자

●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순)

김형오 전 국회의장,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인태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이용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한국정책학회장),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임채정 전 국회의장,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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