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사회     

경제     

정치     

국제     

안보     

문화/연예     

미디어     

북한/통일     

스포츠     

독자마당   

기사제보   

전체기사   

          여영무 칼럼

        지용우 칼럼

        정운종 칼럼

        정창인 칼럼

        남시욱 칼럼

 

 
대선 도전 차남에 “미국은 이미 너무 많은 부시를 가졌단다”
‘美대통령의 부인이자 어머니’ 바버라 부시 별세 1925∼2018
 
     
기사입력
2018/4/19 10:14 

 
대통령의 부인으로, 또 다른 대통령의 어머니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바버라 부시 여사가 17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자택에서 남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향년 93세.

최근 건강이 악화한 부시 여사는 숨지기 이틀 전 “더 이상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생의 마지막을 담담히 준비했다. 그는 최근 울혈성 심부전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부시 가문의 대변인 짐 맥그래스는 “부시 여사는 건강이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돌처럼 단단했고, 자신보다 남을 더 걱정했다”라고 전했다.

부시 여사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소탈함’에 있다. 그는 1953년 세 살배기 딸 로빈을 백혈병으로 잃은 뒤 스트레스로 20대 후반부터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남편이 제4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1989년) 후 ‘대통령 부인이 아니라 대통령의 엄마처럼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남편의 취임식 때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세 줄짜리 모조 진주 목걸이에 대해선 “목주름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소용이 없다”며 농담하기도 했다.

1989년 조지 부시 제41대 미국 대통령(왼쪽)이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을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가운데)가 지켜보고 있다. 이날 부시 여사가 목에 걸었던 세 줄짜리 모조 진주 목걸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AP 뉴시스
소탈하지만 가벼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녀들에게 ‘집행자(enforcer)’로 통했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면 눈썹을 추켜올리면서 따끔하게 지적했다.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이 대통령 재임 시절, 침실 의자에 앉은 채로 커피 테이블 위로 발을 올렸다. 그러자 부시 여사는 “당신이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먼저 테이블에서 발을 내려라”고 말했다.

부시 여사는 남편과 장남 조지 W 부시 제43대 대통령(2001년 취임)의 당선에도 큰 역할을 했다. 대선 기간 미국 전역을 돌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부시 여사는 차남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2016년 대권 도전만은 끝까지 말렸다. “아들아, 미국은 (너 말고도) 이미 너무 많은 ‘부시’를 가졌단다”라며 설득했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대권 도전을 포기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캠페인을 도왔다.
  
부시 여사는 대통령 부인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뒤 논란이 될 만한 정치적 발언은 삼갔다. 그 대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했다. 백악관 입성 첫해인 1989년 그는 ‘바버라부시재단’을 설립해 미국 내 문맹퇴치 운동에 앞장섰다. 아들 닐 부시가 어렸을 때 난독증을 겪어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많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몸소 실천한 대통령 부인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부시 여사는 남편과 73년간 함께하며 역대 대통령 부부 중 가장 긴 결혼생활을 유지한 커플로 꼽힌다. 부시 여사의 손녀 제나 부시는 최근 NBC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여전히 매일 밤 할머니에게 ‘사랑해 바비(바버라의 애칭)’라고 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던 존 수누누는 “부시 여사가 백악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대통령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부인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고 16일 피플지에 밝혔다.

부시 여사가 남긴 1990년 웰즐리대 졸업식 연설은 미국 역사상 명연설로 꼽힌다. “삶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여러분은 시험을 하나 더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나, 계약 한 건을 더 체결하지 못했던 걸 후회하진 않을 겁니다. 남편, 아이, 친구,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했던 시간에 대해 후회할 겁니다.” 그는 큰 후회 없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73년 함께한 부시, 종일 아내 손잡고 임종지켜

… 트럼프 “미국 가정의 가치 수호한 사람” 애도▼


17일 바버라 부시 여사의 별세로 가장 큰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은 남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비롯한 그의 가족이다.  

부시 가족의 대변인 짐 맥그래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부시 전 대통령은 73년간 함께했던 사랑하는 부인 바버라 여사를 잃게 되어 큰 상심에 빠져 있다. 오늘 하루 종일 바버라 여사의 손을 꼭 잡고 임종을 지켰다”고 전했다. 이어 맥그래스 대변인은 “매우 힘든 시간이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마음을 강하게 먹고 있으며 그를 지지하는 가족들로부터 힘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어머니의 죽음으로 우리 가족은 슬픔에 빠졌지만 우리의 영혼은 안정을 찾았다. 어머니의 영혼이 안정을 찾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라며 “어머니는 우리를 긴장하게 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웃게 했다. 나는 바버라 부시를 어머니로 둔 운이 좋은 남자였다”고 밝혔다.

부시 여사로부터 “여성과 군대에 대해 끔찍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애도 행렬에 동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공동 성명을 내고 “부시 여사는 미국 가정의 가치를 수호한 사람”이라고 애도했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백악관과 전국 공공기관 및 군 시설에 조기를 게양하라’고 지시했다.

생전 부시 여사와 가깝게 지냈던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위터를 통해 부시 여사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1991년 겨울, 부시 여사는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남편, 손자, 슈워제네거 부부와 썰매를 타다 발목을 다친 적이 있다. 슈워제네거는 “당시 부시 여사는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과 함께 병원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재밌게 놀라’고 했다”며 “지금도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전했다.

부시 여사의 장례식은 21일 오전 11시 텍사스주 휴스턴의 세인트마틴 주교회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부시 부부가 예배를 드리러 다녔던 곳이다. 부시 여사는 딸 로빈의 무덤이 있는 텍사스A&M대 부시도서관 부지에 묻힐 예정이다. 딸 로빈은 백혈병을 앓다 1953년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포토뉴스        Photo news

 헤드라인 News